아티스트: Black Moon
앨범 타이틀: Enta Da Stage
발매 년도: 1993년 10월 19일
레이블: Nervous Records
장르: 붐뱁
평점: 9/10
1993년은 여러 명작 힙합 앨범들이 나온 해이다. 대표적으로 우탱 클랜(Wu-Tang Clan)의 [Enter The Wu Tang (36 Chambers)]와 스눕 독(Snoop Dogg)의 [Doggystyle]이 있다. 이외에도 여러 퀄리티가 좋고, 상업적 성공까지 거둔 앨범들이 1993년에 발매되었으나, 그 중 심각하게 저평가된 앨범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 블랙 문(Black Moon)의 [Enta Da Stage]라고 할 수 있다.
래퍼 벅샷(Buckshot)과 파이브 피트(5ft), 그리고 프로덕션 팀 다 비트마이너즈(Da Beatminerz)의 멤버이자 프로듀서 겸 디제이인 DJ 이블 디(DJ Evil Dee)로 구성되어 힙합 슈퍼 그룹 부트 캠프 클릭(Boot Camp Clik)의 멤버였던 이 그룹의 데뷔작은 평론가들에게 큰 호평을 받고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반향을 일으켰다고는 하나 그것이 상업적 성공으로 직결되지는 않았고, 많은 힙합 팬들, 심지어 90년대 힙합의 팬이라고 자부하는 이들도 이 앨범은 아예 모르거나 들어보지 않은 경우가 많게 되었다. 그러나 이 앨범의 퀄리티를 생각하면 이는 그 시기에 치열했던 경쟁을 감안해도 상당히 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앨범은 위에 말했듯이 큰 인지도를 얻진 못했지만 알게 모르게 씬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프로덕션 팀 다 비트마이너즈가 도맡은 강력하고 묵직한 드럼 위에 최소한의 루프를 얹어 전개하는 특유의 스타일로 이후 소위 '먹통 붐뱁'으로 불리는 스타일에 영향을 끼쳤으며, 벅샷의 자아성찰이나 사회적 메시지를 완전히 배제한 하드코어한 가사 또한 이후 래퍼들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과장을 좀 보태서 말하자면 이 앨범의 '먹통 붐뱁' 사운드는 이후 나온 노토리어스 비아이지(The Notorious B.I.G.)의 [Ready To Die]와 맙 딥(Mobb Deep)의 [The Infamous] 같은 붐뱁 명반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실제로 이 앨범 전후의 붐뱁 사운드는 상당히 다르다), 이 앨범이 없었으면 이후 1990년대 동부 힙합 사운드도 우리가 현재 듣고 있는 것과 달랐을 것이다. 이외에도 the를 da로 바꾸는 등의 의도적인 맞춤법 오류, 오닉스(Onyx) 등도 시도한 소위 '떼창' 스타일의 훅 등 이 앨범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넓게 퍼져 있다.
일단 이 앨범을 들으면 가장 먼저 들 생각 중 하나가 이 앨범은 다양성을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하드코어 랩 앨범들도 진정성을 부여하기 위해 흔히 가지고 있는 컨셔스 랩 트랙이나 자아성찰적인 트랙도 없이, 앨범 전체가 먹통 붐뱁 사운드와 범죄에 관련된 하드코어한 가사들로 채워져 있다. 이런 점은 대부분의 앨범들에서는 단점으로 치부되어 앨범의 평가를 깎아먹는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이 앨범에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 앨범을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건조한 붐뱁 사운드 덕분에 팬이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다양성이 없다는 점이 이 앨범을 동부 힙합의 걸작으로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앨범 전체가 어쩌면 의도적으로 다양성을 배제한 탓에 중간에 별로라고 할 만한 곡들이 없고, 모든 곡들이 동부 힙합의 진수를 보여주지만 아래 문단에서 설명할 하이라이트 트랙들이 중간중간에 존재해 몇몇 평작들이 가지고 있는 단점인 눈에 띄는 트랙의 부재라는 단점도 피해간다.
서론에서 설명했다시피 이 트랙의 프로덕션은 다 비트마이너즈가 도맡았고, 뉴욕 붐뱁 사운드라는 점에서 DJ 프리미어(DJ Premier)와 피트 록(Pete Rock) 등의 다른 동부 힙합의 거장 프로듀서들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다 비트마이너즈의 사운드는 확실히 다른 프로듀서들과 구별할 수 있다. 대부분의 90년대 동부 프로듀서들이 그렇듯이 드럼 사운드가 강조되어 있지만 좀 더 둔탁하며 로우하며, 루프는 생기라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으며, 오히려 드럼 사운드가 더 귀에 잘 들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루프는 미니멀하다. 다른 동부 프로듀서들에서 거리의 느낌만 쏙 빼내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룹의 래퍼들인 벅샷과 파이브 피트도 그들의 실력을 충분히 보여준다. 파이브 피트는 소위 '공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중이 거의 없지만, 벅샷의 랩과 가사는 눈길을 끈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 앨범의 특징은 사회의식적인 면모는 전혀 보여주지 않고 거리에서 범죄들을 저지르며, 후회 같은 것도 없어 보이는 가사이다. 하지만 이런 가사와 그의 랩만큼 다 비트마이너즈의 묵직한 프로덕션과 어울리는 것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다 비트마이너즈의 프로덕션의 랩 버전이 있다면 벅샷의 랩일 것이고, 벅샷의 랩의 비트 버전이 있다면 다 비트마이너즈의 프로덕션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 정도다. 벅샷은 엄청나게 테크니컬한 랩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애초에 1993년에는 최근에 나오는 만큼 초인적일 정도의 테크니컬한 랩이 거의 없었으니 시대를 생각하면 그렇게 할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만약 '건조함'과 '묵직함'이라는 단어가 앨범이었다면 이 앨범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이 앨범은 건조함과 묵직함의 정수를 보여주고, 그 시대에 발매된 앨범들 중 이것보다 나은 앨범은 있어도 이것만큼 건조함과 묵직함을 잘 살려낸 앨범은 없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들 덕분에 이 앨범은 항상 리스너들을 (가보지도 않았을) 범죄가 난무하는 90년대 뉴욕의 거리로 던져 넣는 마력이 있다.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앨범은 아니지만, 이 앨범은 90년대 붐뱁을 대표하는 명반들 중 하나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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